내가 없는 곳에서도 나를 생각하나요?(윤동주, 『별 헤는 밤』)
[ 아리칼럼 ]
내가 없는 곳에서도 나를 생각하나요?
- 윤동주, 『별 헤는 밤』 -
문득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깨닫는 순간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을 때, 홀로 걸을 때 그 사람이 떠오른다. 당혹스럽다. 지금 내 옆에 없는데, 오히려 내 마음 속 그대는 더욱 선명해질 때. 아! 그대와 나의 거리(물리적, 감정 등)는 나를 홀로 노래하게 한다. 그리움은 혼잣말이 되고, 이것들이 이어져 노래(시)가 된다. 그러면서 홀로 있는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대와 닿을 수 없는 실패한 사랑을 통해 나 자신을 더욱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나르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용운 시인은 “모든 기룬 것은 다 님”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그리워하는 애틋해하는 대상은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고향일 수도, 어머니일 수도 다양하게 치환될 수 있다. 즉, 서정시가 실패한 사랑, 그리움, 고독 즉 대상의 부재에 관해 노래하는 것은 “개인의 탄생”이 가능하게 때문이다. 현대시는 고독한 개인을 통해 개별발화, 독백적 발화를 한다. 부재는 역설적이게 존재를 깨닫게 하고, 스스로와 마주하게 한다. 이를 바탕으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분석해보겠다.
윤동주(1917~1945)는 식민지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시인이다. 또한 ‘부끄럼’을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게 보여준 시인이다. 그의 시 <별 헤는 밤>(1941.11.6)은 별을 바라보고 있는 밤을 배경으로 노래한다. 과거 회상과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현재-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전개된다.
가을밤이다. 1~3연은 현재로서 화자는 하늘의 별을 세고 있다. 별을 다 세지 못하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한다. 아침이 쉽게 오고, 내일 밤이 남았으며, 아직 청춘이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4~7연은 과거를 추억하며 별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그 이름은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 소학교 아이들, 가난한 이웃들,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시인들 이름들’ 그러나 이들은 너무나 멀리 있다. 아슬히 먼 것은 슬픈 일이다.
8~9연에서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화자는 여기에서 그리움이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앞에서 수많은 그리움을 말해놓고, 모른다고 하는 것은 화자는 약간의 아노미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이름을 써보지만, 이내 흙으로 덮어 버린다. 그 이유는 벌레에게 본인을 투영하여 밝힌다. 너무나 그립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현실 속에서 본인의 이름이 부끄럽고 슬펐기 때문이다. 벌레가 밤 새워 울었다고 했지만, 실상은 화자가 눈물 흘렸던 것이다. 마지막 10연을 보면 이 시련 가득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것을 기대하며 끝을 맺는다.
여기서 더욱 주목해보고 싶은 시어는 ‘어머니’와 ‘별’이다. 먼저 ‘어머니’라는 단어는 시 속에서 네 번 등장한다. 어머니는 혈육 모친을 뜻하지만 더 확장시켜보면 근원적 모태이다. 이는 잃어버린 전망, 향수(鄕愁)의 본질, 유토피아, 초월적 존재 등으로 치환될 수 있다. ‘어머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그리움이 순식간에 불러일으켜진다. 어린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세상의 전부다. 한 때 나의 모든 것이었던 어머니는 이제 곁에 없다. 다음으로는 ‘별’이다. 별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곁에 있다. 그리워하는 소중한 것들이 모두 떠나도 별만큼은 내 곁을 지켜준다. 그러나 별과 손 잡으려하면 닿을 수 없다. 닿을 듯 닿을 수 없음은 오히려 그리움을 가중시킨다.
이상에 살펴본 바와 같이 윤동주가 별을 따라 길을 걸어갔듯,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서문에 보아도 별을 따라 홀로 길을 걸어가는 개인이 등장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오늘날 밤 하늘의 별은 무늬만 별일 뿐, 더 이상 길의 지도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신이 함께했던 시대, 전망이 획득됐던 시대는 끝났다. 윤동주의 <길>이라는 시에서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라고 말하듯, 사람의 생애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발자국일 뿐이다. 개인은 길을 잃고 방황한다. 단지 끊임없이 찾으며 고독히 걸어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나르시즘’에 빠지기도 한다. 동시에 이것은 인간 본연의 필연적 문제이기에 지켜보는 이는 공감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희극보다 비극이 현재까지 더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한다. 우리는 만나지 않는 방식으로 만났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나를 생각하나요?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서정시는 시작된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